독일관의 변천과 원근법
1871년 아직 [비극의 탄색]을 집필하는 중이었던 니체는 '독일적 재생'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1888년 12월 8일의 스트린드베리에서 보낸 편지에서 [이 사람을 보라]의 저작이 "파멸적일 정도로까지 반독일적이다"라고 말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니체의 주요 저작 대부분이 성립하는 이 약 18년간에 '독일'이라는 말에 담긴 의미는 이 정도로 변화하고 있다. 거기에는 확실히 개인적인 이유도 있다. 예를 들어 바젤 시기에 새로운 독일의 교육과 교양을 위해 끊임없이 마음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독일에서 그의 저작에 거의 반향이 없었던 것은 그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다. 하지만 그것을 니체는 그에게 특유한 '귀족적 급진주의' [브란데스에게 보낸 편지 1887. 12. 2] 때문에 털어놓고 이야기할 수 없었다. 그런 까닭에 니체가 자신의 저작은 문명 세계 곳곳에서 읽히고 있으며, 읽히고 있지 않는 것은 독일 즉 '유럽의 평탄지' 뿐이라고 호언하는 발언은 고립 상태를 이용하여 반격함으로써 우월성을 획득하고자 하는 고독자의 때로는 익살스러운 양상마저도 보이는 조급함의 시도의 하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개인적 사정은 니체의 독일관의 변화를 설명하는 하나의 동기지만, 후기에서의 독일관을 납득시키는 설명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니체는 그 자신의 시도가 '편협한 해석의 극복'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것은 그의 '저작에 일관된' 경향이라고 한다. 만약 그의 독일관의 변화를 이 틀에서 생각한다면 [비극의 탄생] 시대에는 아직 높이 평가되고 있던 독일과 독일인에 대한 평가의 전환이 일관된 사고에 따른 것임이 이해될 수 있다. 그때마다 '자기의 것'을 '타자'의 관점에서 '따져 묻는' 것은 니체의 비판적·해석학적인 방법이다. 예를 들어 프로테스탄티즘을 가톨릭이 관점에서 또는 독일 문화를 다른 나라들 특히 프랑스의 시점에서, 나아가 유럽문화 전체를 그 밖의 문화 전체의 관점에서 캐물어 간다. 이러한 원근법주의는 일정한 구조를 지니고 있는바, 처음에는 높이 평가한 것이 다음에 부분적으로 평가를 깎여 받거나 반대의 평가를 받게 되고, 머지않아서는 완전히 비난받게 된다. 이 원급법에서 언제나 다루어지는 주제는 루터주의, 베토벤의 음악, 바이마르 고전주의, 바그너, 비스마르크에 의한 제국에 의해 특징지어지는 독일 근대의 문화다.
초기의 독일관
니체가 슐포르타 시기나 학생 시기에는 루타주의나 프로이센 기질 또는 고전적 교양 등의 스스로의 전통에 대해 위화감을 느낀 적이 없었다. 그러나 바그너와 알게 되고 또한 바젤대학에 초빙을 받았을 무렵부터 서서히 자신의 시대가 문화를 동일한 독일 문화이면서도 이미 이질적인 것이 되어 있는 괴테 시대나 신인문주의 시대와 같은 과거의 문화와 대비하고, 사적·공적인 발언에서 참된 독일 문화의 재생을 요구하게 된다. [음악 정신으로부터의 비극의 탄생]과 바젤에서의 강연 [ㅇ리 교육 기관의 미래에 대하여]에서 자주 바그너의 논문 [독일적인 란 무엇인가]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니체는 이 논문에서 '디오니소스적인 새'의 '너무도 행복하고 매혹적인 울음소리'가 독일인에게서 '오래전에 완전히 망각되어 버린' '신화적인 고향'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제2제 정기 독일'의 문화에 대한 니체의 비판은 무엇보다도 시대 비판이었다.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독일의 문화도 승리했다고 하는 생각은 잘못이며, '승리를 완전한 패배로 변용'시켜 버리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요컨대 이 승리는 '제국을 소중히 여기는 나머지 독일 정신을 근절시켜 버린다.'라고 하는 것이다. 이 비판은 니체가 생각하는 참된 독일 문화의 관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참된 독일 문화란 두 가지 개혁 요컨대 루터의 종교개혁과 괴테 및 실러에 의한 개혁이지만, 그들의 고귀한 정신을 독일인은 모조리 잃어버렸다고 한다. 요컨대 신흥 독일 제국에 대한 초기 내체의 비판은 아직 그 반동적인 정치에 대해서가 아니라 독일은 그 국가의 통일과 독립성의 획득과 함께 '독일의 독자적인 문화'도 전수받았다고 하는 '교양속물'의 어리석은 자기 과신을 향해 있었던 것이다. 독자적인 문화는 커녕 그 모습에 전혀 변함이 없이 서쪽의 이웃나라들을 흉내 내고 있을 뿐이라고 간주하는 니체는 바그너의 정신에서 '참된 독일 예술'을 다시 획득하는데 힘써야 한다고 설득하고 있다. [비극의 탄생]에서는 그리스 정신과 독일 정신이 유사하다고 말해지고 있지만, 바로 그런 의미에서 '우리 독일의 고적적 저작가들'을 상기하고, 또한 그 저작가들에 의해 매개된 그리스 문화를 상기함으로써 '고전적 교양'의 혁신이 이루어져야만 한다고 니체는 주장한다.
탈독일화
널리 알려져 있듯이 니체는 독일인에 대해 지녔던 이 기대를 머지않아 잃어버리고 말았다. 점차 니체는 동시대의 독일을 과거의 더 나은 독일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독일 문화의 모든 것을 유럽을 기준으로 하여 측정하게 되어간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르네상스와 계몽기로 경도되기 시작하며 또한 '자유정신'을 생각하기에 이르러 게르만적 신화나 루터주의로부터 괴리되어 간다. 이전에는 영광의 빛에 둘러싸여 보였던 것이 이제 독일과 독일인에 대해 혐의를 불러일으키는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특정한 문화 현상을 각각의 '민족의 특성'으로 환원하게 된다. 이 점에서 니체는 바로 시대의 아들인 것이다. 나아가 이전에는 그토록 높이 평가하고 있던 '독일의 내면성'에 대해 엄격한 판정을 내리게 된다. 이 내면성에 대해 [삶에 대한 역사의 공파]에서는 아직 허용하고 있는 점이 있다. 예를 들어 만약 외국인이 독일인에 대해서 그 내면성에 관해 '외부에 대해 작용하고 스스로에게 형태를 부여하기에는 너무나 약하고 혼란스럽다'라고 비난했다 하더라도 그에 대해 '일리 있다"라는 정도의 의혹을 품고 있었던 데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 자주 말해지는 '독일적 심원함'은 자기에게 적대하는 본능의 불결함에 다름 아니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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