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 대해 그리스도교보다 높이 평가하다
한 번은 아시아적인 또한 초아시아적인 눈으로 가능한 모든 사유방식 중 세계를 가장 부정하는 사유방식으로 꿰뚫어 들어가 바닥을 본 적이 있는 부처나 쇼펜하우어처럼 도덕의 속박이나 망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선과 악의 저편에 있는 사람, 이러한 사람은 그것을 의도한 적이 없다고 해도 아마 이로 말미암아 가자 대담하고 생명력 넘치며 세계를 긍정하는 인간의 이상에 눈을 뜨게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선악의 저편'에 서는 사상으로서의 불교는 그런 까닭에 '신'없는 세계의 수용에서 유럽보다 훨씬 앞서 가는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들은 신을 배제했다. 유럽도 언젠가는 그렇게 해야만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들에게서 승려와 매개하는 사람들 역시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력에 의한 구원에 가르치는 교사, 즉 부처가 출현했다. 아직도 유럽은 이러한 문화적 단계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하지만 불교가 세계종교로서 교의화되고 거기에 그리스도교와 마찬가지로 세계 부정의 금욕윤리가 몰래 들어올 때 니체는 불교도 부정한다. "여기서 추론되는 것은 불교와 그리스도교라는 두 세계종교가 생겨나 그리도 급속하게 전파된 원인은 의지와 커다란 질병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랬다. 이 두 종교는 의지와 질병을 통해 '너는 마땅히 해야 한다.'를 향한 불합리하고 절망적인 요구에 직면했던 것이다. '너는 마땅히 해야 한다'를 향한 요구란 금욕주의적 이상을 의미한다. 그러한 이상의 궁극적인 지점으로서의 '열반'을 부정하는 것과 '저편'에의 지향은 니체가 불교 이해 안에서 결코 모순되지 않는다.
언어의 마술사 니체
언어에 대한 예리한 통찰을 저서와 유고의 곳곳에 아로새기고 있지만, 체계적인 언어철학이나 언어론이라고 부를 수 있는 논고는 남기지 않았다. 언어에 관해 유일하게 정리된 고찰을 전개하는 것은 1983년 여름에 쓰이고 1903년에서야 겨우 공표된 [도덕 외적인 의미에서의 진리와 거짓에 대하여]라는 표제를 지니는 논문이다. 그는 이 논고에서 언어와 그것이 표시하는 개념에 대한 파괴적인 비판을 감행하고, 언어에 의해서는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진리 그 자체가 '착각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게 된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철저하게 폭로한다. 이 논문에 비롯해서 [자라투스트라] 이전의 저작들에서 언어의 기능과 역할은 대체로 부정적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러나 제3부에서는 전적으로 전환하여 '언어와의 화해'라고도 불러야 할 긍정적 언사가 나타난다. 부정으로부터 긍정에로의 이 전환에 니체의 언어론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니체가 언어에 대한 위화감과 불신감은 이미 청년기에 그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던 듯하다. 18세기의 그가 어머니와 누이 앞으로 써 보낸 1863년 9월 6일 자 편지에서 그 위화감은 이미 '숙명'이라는 상징적인 언어로 표현되고 있다. "무엇이건 제멋대로 생각해도 좋은 그러한 시기가 있습니다. 그러한 때 저는 자신의 멜로디를 위해 언어를 찾고, 자신의 언어를 위해 멜로디를 찾는다든지 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것으로 된 이 언어와 멜로디가 하나의 합쳐지면, 그것들은 저의 하나의 영혼으로부터 나온 것이면서도 서로 어울릴 수 없습니다. 그럴지라도 이것이 저의 숙명인 것이겠지요"
그가 작곡에서도 어릴 적부터 비범한 재능을 보여주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만, 흘러넘치는 곡 구상에 언어가 쫓아가지 못하는 즉 '언어와 멜로디가 어울릴 수 없다'라고 하는 근원 체험을 가졌던 것은 그의 그 후의 언어관에 미묘한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음악과 언어의 어긋남과 대립이라는 이러한 모티브는 머지않아 처녀작 [비극의 탄생]에서 명확한 주제가 되어 나타난다. "언어의 세계 상징은 바로 그 때문에 언어로써는 어떤 방식으로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음악에 비하면 모든 현상은 오히려 비유에 불과하다. 따라서 현상들의 도구이자 상징인 언어는 결코 음악의 가장 깊은 내면을 외부로 돌려놓을 수 없으며, 음악을 모방하는 즉시 언어는 음악과의 피상적인 접촉 상태에만 머무르게 된다.
이와 같은 음악에 대한 찬양과 언어에 대한 불시이라는 모티브는 그리스 비극에 논할 때에도 형태를 변화시키면서 변주된다. 언어의 드라마로서밖에 그리스 비극을 접할 방법이 없는 현대인은 비극을 실제로 상연된 것보다 피상적이고 천박한 것으로 이해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니체에 따르면 "신화라는 것은 말해진 언어 속에서 결코 적당한 객체화를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며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당시 신화의 최고의 정신화와 이상성에 도달하는 일은 언어의 시인에게는 불가능했지만 창조적인 음악가로서의 시인에게는 언제 어떠한 순간에도 성공이 가능했다."는 점이다.
[비극의 탄생] 출판 1년 후에 쓰인 [도덕 외적인 의미에서의 진리와 거짓에 대하여]는 언어에 대한 니체의 이러한 근원적 위화감을 명시적인 '언어 비판'이라는 형태로 전개한 것이다. 거기서 그는 "언어의 저 관습이라는 것은 어떠한 사정에 놓여 있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인식의, 진리 감각의 산물인 것일까? 표시와 사물은 서로 일치하는 것일까? 언어의 모든 실재의 적정한 표현인 것일까?"라는 물음을 제기한다. 이 물음들은 바로 이후의 분석 철학자들에 의해 제기된 것이다. 기묘한 일이긴 하지만, 그들도 역시 니체와 마찬가지로 '언어에 대한 불신'에서 출발했던 것이다.
예를 들어 G. 프레게는 일상 언어에서의 의미의 변동에 대해 논의하면서 그와 같은 변동은 '논증 과학의 이론 구성에서는 피해야 하며, 완전한 언어에서는 전혀 허락될 수 없다"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모든 철한은 '언어 비판'이다"라고 갈파한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철학 논고]에서 "일상 언어로 부터 언어의 논리를 직접적으로 간취하는 것은 인간에게는 불가능한다. 언어는 사상을 변장시킨다"라고 하여 철학적 문제가 언어 사용의 혼란에서 유래한다는 것을 지적한다. 그들은 이러한 '언어에 대한 불신'을 논리적으로 완전한 이상 언어를 구축하는 것에 의해 해소하고, 이른바 '언어론적 전회'로의 길로 힘차게 나아가기를 선택했다. 그러나 "논리학이 그것인 바의 기호의 약속이 본래 어떠한 가치를 가지는가라는 의문을 지니고 있던 니체에게 있어 그것은 고려할 수 있는 해결법이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예술 체험의 근원성에 정위함으로써 언어에 대한 불신을 극복하는 길을 선택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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