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관
그러면 니체는 반유대주의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취했던가? [선악의 저편]의 250번에서 니체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유럽은 유대인에게 어떤 빚을 지고 있는가? 여러 가지로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최선의 것이자 동시에 최악의 것이 하나 있다. 즉 도덕에서의 위대한 약식, 무한한 요구와 무한한 의미가 주는 두려움과 장엄함, 도덕적으로 의심스러운 것이 갖는 모든 낭만성과 숭고함이 그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바로 삶을 향한 색채 변화 놀이와 유혹의 가장 매력적이고 위험하며 정선된 부분이다. 그것들의 남은 미광을 받아 오늘날 우리 유럽 문화의 하늘이, 그 저녁 하늘이 타오르고 아마 불타 없어지려는 것 같다."
유대인에게 유럽이 빚지고 있는 것, 그것은 도덕에서 무한성을 사고하고자 하는 태도다. 그것은 초월성에서 인간의 윤리의 척도를 찾고자 하는 이상주의적인 도덕의 기저를 이루는 것이다. 철저한 일신교적 신앙 윤리를 인류사상 처음으로 산출한 유대인만이 이러한 이상주의적인 도덕에의 지향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이것을 니체는 '최선'과 '최악'의 양의성에서 보고자 한다. '최선'의 측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도덕의 계보]에 있는 '구약 성서'에 나는 위대한 인간들, 영웅적 광경, 지상에서 가장 드문 어떤 것, 강인한 심정이 지닌 유일무이한 순박함을 본다. 는 기술에서 명확할 것이다.
유대인의 정신적 기원이라고 해야 할 구약성서의 세계에서 니체는 고대 그리스, 로마 세계에 필적하는 '강함'을 본다. 그것은 니체가 [안티크리스트]에서 말하고 있는 "근원적으로 이스라엘은 특히 왕국 시대에 모든 것과 옳은 관계를 다시 말해 자연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의 야훼는 힘에 대한 표현이었고 기쁨 그 자체에 대한 표현이었으며, 그들 자신에 대한 희망의 표현이었다. 야훼 안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승리와 구원을 기대하고 야웨화 함께 자연을 신뢰했다."는 내용에 상응한다. 하지만 이 강함이 도덕적 사고에 매개될 때 불가피하게 그것은 변질을 겪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로부터 유대인이 '세계사상 가장 기묘한 민족'으로서 인류에게 초래한 사태가 생겨난다. 그것은 '모든 자연, 모든 자연성, 모든 현실성, 외부 세계 및 내부 세계 전부를 철저하게 위조하는 것'이었다.
반유대주의 비판
그런데 유대인의 이러한 최악의 측면에 대한 니체의 필치에 주목할 때, 니체도 역시 동시대의 반유대주 의 흐름에 편승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여기에 니체가 바그너와 뒤링에 대해 말하고 있는 내용을 인용해 두고자 한다. “바그너는 독일로 돌아온 이래로 내가 경멸하는 모든 것으로 차례차례 하강해 갔다. 반유대주의에게로마저도.. 사실 그때가 작별을 고하기에는 최적기였다. 나는 곧 그 확증을 얻었다. 리하르트 바그너, 그는 가장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부패해 버린 절망한 데카당이고, 갑자기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산산이 부서져 그리스도교의 십자가 앞에서 침몰해 버렸다...."
"나는 귀 있는 독자에게 다시 한번 저 베를린의 복수의 사도 오이겐 뒤링을 상기시키고자 한다. 그는 오늘날 독일에서 가장 점잖지 못하고 역겨운 도덕적 주술을 사용하는 자이다. 뒤링은 심지어 자신의 동료 인 반유대인들 가운데 오늘날 최초의 도덕적 허풍선이다."
바그너에 대한 비판에서 바그너의 반유대주의로의 하강과 그리스도교에 대한 굴복이 등가로 다루어지고 있는 것, 또한 뒤링에 대한 비판에 서는 뒤링에 내재하는 복수, 즉 르상티망의 나타남으로써의 도덕적 허풍선이 반유대주의와 결부되어 있는 것에 주목해야만 한다. 요컨대 니체에게 있어 반유대주의는 유대인의 귀결로서의 '르상티망 도덕' 쪽에, 다시 말하면 니체가 약자의 니힐리즘의 나타남으로 간주한 데카당스 쪽으로 헤아려지는 것이다. 이 점 은 좀 더 동시대적인 맥락에 접근시켜 보면, 독일에서 반유대주의의 이데올로기적 배경을 이루고 있던 게르만 내셔널리즘도 니체가 이러한 '데카당스' 현상의 일환으로서 보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또한 이상주의를 믿는 이러한 가장 최근의 투기꾼들, 반유 대주의자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오늘날 독일에서 온갖 종류의 정신적인 사기가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사실은 정말 부정할 수 없고 이미 명백한 독일 정신의 황폐화와 관련이 있다."
니체에게 있어 반유대주의는 유대인이 인류에게 가져온 이상주의적 도덕의 최후의 귀결로서의 데카당스 상황을 보여주는 하나의 항목에 지나지 않았다. 반유대주의 대 유대인이라는 대립관계를 뒷받침하고 있는 원근법 그 자체를 극복하는 강인한 비판적 인식의 눈길이 야말로 니체가 추구하는 것이었다. 니체가 베른하르트 피르스 터와 결혼한 누이 엘리 자베트가 반유대주의로 기울어지는 것을 경계한 것은 니체의 사후 엘리자베트가 오빠의 원고를 개찬하여 게르만 내셔널리즘과 반유대주의에 들어맞는 니체 상을 날조하고자 한 것과 아울러 생각할 때 대단히 상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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