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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학 공부

반시대적 고찰

by 아이화 2023.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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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반시대성


[다비드 슈트라우스- 고백자와 저술가], [삶에 대한 역사의 공과], [교육자로서의 쇼펜 하우어], [바이로이트의 리하르트 바그너]의 4편으로 이루어진 [반시대적 고찰]은 철저히 호전적인 문화 비판의 글이다. 이 저작들에서 니체가 의도한 것은 제국, 고양, 그리스도교 비스마르 크, 성공이라는 1870년대의 독일에서 찬양되었던 것을 공격하고, 그 대국에서 미래의 문화를 가리켜 보여주는 인간상으로서 '쇼펜하우어와 바그너, 또는 한 마디로 말하자면 니체라는 반시대적 유형'을 그려내는 것이었다. 여기서 반시대적이라는 것은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과감하게 도전하는 자세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 반시대성은 니체가 고전문헌학자로서 근대 문화와 대결하는 자세를 취한 것에 뿌리박고 있었다. 삶에 대한 역사의 공과, 서문에서는 "고전문헌학이 반시대적으로 다시 말해 시대와 대립해서, 그렇게 함으로써 시대에 그리고 바라건대 앞으로 도래할 시대를 위해 영향을 미치는 것 외에 우리 시대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나는 잘 모른다"라고 말하고 있다.

반대로 그의 고대에 대한 몰두도 당시의 독일에서 정체돼 있던 시대의 공기로부터 탈출하고 싶다는 원망에 기초 하고 있었다. 내셔널리즘을 선동하는 풍조와 일시적인 호황에 들떠 있는 부르주아의 자기기만에 대해서도, 이전의 좌파 지식인의 저널리즘적인 활동에 대해서도, 또한 경직된 아카데미즘에 대해서도 혐오를 지닌 니체는 고대 그리스 비극의 재생이 현대의 정제를 날려버릴 것을 꿈꾸고 있었다. 당시의 서간에서 떠오르는 것은 온건한 석학 부르크하르트와 그리스 문화에 대해 이 야기를 리누는 것에서 기쁨을 느끼면서도, 쇼펜하우어를 좇아서 교양의 형해화를 탄식하고, 친우들과 더불어 그리스적인 아카데미아를 구축하는 계획을 세우며, 바그너와 동맹을 맺고서 미래의 문화 건설을 위해 손잡는 것에 감격하고 있는 니체의 모습이다. 이와 같은 문화적 혁신에 대한 기대가 소용돌이치는 가운데, 현대에 숨 막힘을 느끼면서도 아직 완전하게는 그 속에서 납득되고 있지 못한 자이기 때문에 그가 준비한 경고가 [반시대적 고찰],이었다.

거기서 그는 자신의 내부에 있던 모든 '부정적이고 반항적인'을 토해냈다고 한다. 다만 자유정신이 약동하고 비판하는 자신의 스탠스를 다음 발걸음에 서 뛰어넘어가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이후의 저작과 비교하면, 공격의 대상에 구애되어 요설을 휘두르고, 언제나 스스로의 고대 이해를 기준으 로 들고 나오는 [반시대적]의 스타일은 아직 활달한 자유로움이 없다. 그는 [반시대적]을 13편의 시리즈 로 할 계획도 세웠지만, 실현된 것은 교양속물, 역사,•철학자, 예술에 관한 4편뿐이었다. 당시에 유고에 남겨진 계획 속에서 거론되고 있는 고전문헌학, 김나지움, 종교, 국가 전쟁 • 국민, 읽기와 쓰기, 신문, 자연, 사회, 자유에의 길과 같은 주제들 가운데 실제로 초고가 다듬어진 것은 [우리 문헌학자들]뿐이지만 그것들에서 전개되었을 논편의 일부는 강연 [우리 교육기관의 미래에 대하여]에서의 문화 비판으로부터 엿볼 수 있다.

 

 

2. 독일 문화와 공공성에 대한 비판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의 승리와 프로이센 주도에 의한 독일 통일은 위로부터의 내셔널리즘에 영합하는 세력에 의해 환호의 목소리와 함께 맞아들여졌지만, 니체는 이미 전쟁 당시부터 프로이센 국가의 융성이 문화의 장래를 위험에 드러낼 것을 걱정하며 게르스 도르프에게 보낸 편지 어머니 • 누이에게 보낸 편지, 문화를 군사적 • 경제적 성공의 장식물로 평하하는 경향을 우려하고 있었다. [다비 드 슈트라우스]에서는 독일의 여론은 독일의 군사적 승리가 마치 프랑스 문화에 대한 독일 문화의 승리이었기나 한 듯이 찬양하지만, 이것은 문화와는 관계가 없으며, 잘 훈련된 독일군이 과학적인 전술로 싸운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권력에 아첨하여 국민적 자부심을 부추기는 저널리즘은 '독일 제국을 지원할 뿐으로 독일 정신의 패배, 더 나아가 근절'을 초래할 것 같다고 말하고 있다. 문화란 '한 민족의 모든 삶의 표현에서의 예술적 양식의 통일'이어야 함 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문화는 독자적인 양식을 산출하지 못한 채, 역사주의로 도피해 들어가 과거로부터 빌린 것들을 이어 붙여 현대의 추함을 은폐하는 '사이비 문화'라고 여겨진다.
이러한 허위의 문화를 지하는 자들을 니체는 '교양속물'이라고 부르며, 그들은 구미에 맞는 작품을 제공하는 작가를 '고전적 작가'로 꾸며내어 동상을 만든다든지, 도움이 되는 콘서트와 극장과 전람회에 찾아가서 입장료에 상응할 뿐인 오락을 소비하고 독선적인 감동에 몸을 맡긴다든지 하고 있다고 빈정거리는 말투로 그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표제가 되는 다비드 슈트 리우 스는 이전에 헤겔 좌파의 논객이었지만, 이와 같은 지식인도 국민적 열광에 사로잡혀 속물의 문화에 영합하고 있다고 비난의 대상이 된다. 슈트라우스는 반 쇼펜하우어의 낙관주의에 서서 불안을 해소해 주는 형이상학을 날조하고 있다고 여겨지며, 또한 그 문체에 이르러서는 철도, 전보, 증기기관, 거래소와 같은 비유를 사용하면 새롭다고 생각한다고 하여 니체는 슈트라우스의 독일어 표현을 집요하게 왈가왈부하고 있다. 그의 다양한 분야에 설치 비판의 초점을 이루는 것은, 비판적인 기능을 상실한 공공의 논의에 대한 불신이며, 형해와 된 규범과 종잡을 수 없는 내면성으로 분열된 교양에 대한 단순한 여론에 지나지 않으며, 순간, 의견, 유행이 저널리즘 안에서 세력을 떨치고 국가와 경제에서의 에고이즘에 교양인까지 휘말려 들고 있으며 '현재의 예술과 학문도 포함하여 모든 것이 도래하고 있는 야만에 봉사하고 있다.'라는 비판이 행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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