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주의 (Darvinism)에 대해 알아보자
1859년에 다윈의 [종의 기원]이 공간되었을 때 니체는 15세였다. 즉, 다윈의 진화론이 유럽을 순식간에 석권해 간 시기는 그대로 니체의 정신 형성기와 겹치는 것이다. 더욱이 니체가 왕성한 집필 활동을 계속하고 있던 1870년대부터 90년대에 걸친 시기는 사회 다원주의 즉 인간은 유전과 환경에 지배되면서 생존 투쟁을 수행하는 가운데 우승열패의 철칙에 따라 부적응자가 서서히 도태되어 간다고 하는 숙명론적 페시미즘 사상이 세계적으로 유행했던 시대였다. 그런 까닭에 니체가 이러한 시대사조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았을 리가 없다. 사실 그는 다윈의 [종의 기원]과 [인간의 유래]를 정성 들여 읽고 있으며, 또한 랑게의 [유물론의 역사]를 통해 진화론의 사상적 의미를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윈주의에 대한 니체의 태도는 이를테면 양의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요컨대 한편으로 니체의 세계상은 진화론의 영향을 색깔 짙게 반영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그가 남긴 문장에 비추어보는 한에서 다윈주의의 사상에 대해서는 대단히 비판적인 것이다. 그가 그려낸 세계 상이란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별의 질서는 예외에 속한다. 이 질서와 그것에 의해 조건 지어진 지속성이 다시금 예외 중의 예외인 유기체의 생성을 가능하게 했다. 반면에 이 세계의 전체적 성격은 카오스다. 필연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질서, 조직 구조, 형식, 미, 지혜, 그 밖에 우리가 심미적 인간성이라고 부르는 모든 것이 결여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우주는 법칙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자연에 법칙이 있다고 말하는 것을 경계하자. 자연에는 오직 필연성이 있을 뿐이다. 자연에는 명령하는 자도 복종하는 자도, 위반하는 자도 없다"
우주를 의미도 목적도 없는 혼돈으로 간주하는 니체의 기본 사상은 분명히 그의 다윈에 대한 친숙함의 하나의 귀결이었다. 니체에게 있어 우연적 변이에 기초하는 자연선택의 과정은 형이상학적 의미가 벗겨내진 자연 과정을 상징하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그런 까닭에 삶의 개념과 초인사상도 포함하여 니체의 철학 전체를 진화론의 맥락 안에서 해석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 R 리히터가 삶의 개념에 생물학적 의미를 부여하고, 니체의 철학을 생물학적 진화론이라는 관점에서 특징지었던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또한 짐멜은 "니체는 인류의 진화라는 사실에서 삶으로 하여금 다시 자기를 긍정하도록 하는, 어떤 목적의 가능성을 발견한다"거나 "니체는 쇼펜하우어와는 반대로 진화의 사상으로부터 전적으로 새로운 삶의 개념을 추출해 왔다"라고 하여 니체 철학의 핵심을 "다윈의 진화론 이념의 시적 • 철학적 절대화로 규정하고 있다.
이미 니체 자신이 게르스도르프에게 보낸 편지에서 "최근의 어떤 신문에서 음악적인 것으로 번역된 '다윈 진화론과 물질주의'라고 나의 것을 부르고 있었다네. 불순한 것을 '다윈의 원세포'와 비교한다든지 하고 있었다네"라고 말하고 있는 것에서 보더라도 니체의 사상을 진화론과 결부시키는 것은 당시부터 상당히 널리 행해지고 있던 해석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니체 자신은 이와 같은 해석을 거절하고 스스로 '반다윈'을 표방한다. 그는 생존 투쟁 개념을 비판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투쟁이 일어난다고 하면, 유감스럽게도 그것은 다윈학파가 바라거나 이들과 더불어 사람들이 바랄 수 있을 만한 결과와는 완전히 정반대일 것이다. 즉 강자나 특권자들이나 행복한 예외자들에게 불리할 것이다. 종은 완전성이라는 상태 안에서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약자가 거듭해서 강자를 지배하기 때문인바, 그것은 약자가 다수자이고 약자가 더 영리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동일한 비판이 유고에서도 자주 나타난다. 그러나 여기서 니체가 표적으로 하는 것은 '우승열패'를 내걸 고서 사회 현상을 설명하는 사회 다윈주의자들일 것이 다. 다윈 자신이 그러한 말을 사용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생존 투쟁이라는 개념 그 자체가 일종의 비유적 형상이라는 것을 단언하고 있다. 따라서 니체의 창끝은 다윈 이론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통속화된 다윈주의로 향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약자가 강자를 능가하는 역도태라는 개념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만 한다. 이 사상은 헤켈 등의 사회 다윈주의를 매개로 하여 나치스의 인종 정책과 우생 사상으로 결부되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니체의 사상이 이 단계에 머무는 것이라면, 그것은 뒤집힌 사회 다윈주의일 뿐이다. 그러나 니체는 그것을 '영원 희귀' 사상을 통해 극복함으로써 새로운 철학적 시계를 여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윈주의는 니체의 시상적 전개에서 긍정과 부정의 양 측면에서 중요한 이끄는 실의 역할을 수행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단눈치오 란?
16세에 처녀시집 [이른 봄에]를 내고, 도취적 감격과 극도로 다듬어진 신경증적 감수성에 의해 호프만스탈과 더불어 천재 시인으로서 찬양된 단눈치오는 일찍부터 니체에 대해 친숙하며, 니체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 [니체를 그리며]에서
오, 이탈리아여, 너의 태양, 너의 태양은
그의 이마를 갈색으로 그을리며,
그의 강인한 지혜를 성숙시켜,
그가 쏘는 화살의 촉을 황금으로 변화시켰네.
저 성지 참배하는 야만인.....
이라고 노래한다. 그리스의 자식을 자칭하고, 고대의 위대함으로부터 새로운 생명을 되살리고자 하는 단눈치오는 니체를 '야만인'이라고 부르면서 그의 사상, 그의 삶의 방식에서 강렬한 영향을 받고 있었다. 대표작 [죽음의 승리]의 주인공 클라우디오는 육욕에 불타는 정열적인 공상과 초낭만주의적 감수성을 지닌 초인이며, 그것이 에로스와 죽음의 뒤섞임으로 받아들여지는 바그너의 세계와 기묘하게 공존한다. 창조력과 감정의 육적인 생명의 영속적 발전이라는 형태로 변형된 초인은 먼 고대를 회상하는 병적이고 동경적인 포에지, 달빛에 비추어진 여성미를 찬미하는 낭만적인 감상성에 휩싸인 것으로, 삼각관계나 근친상간 등 육욕의 외집 함이라는 정신적인 독을 흩뿌려 세기 전환기를 사이에 두고 서구의 문단에 강렬한 인상을 주는 것이었다. 이탈리아의 시인들 가운데서는 단눈치오와 더불어 마리네티도 니체의 그림자를 짙게 새기고 있지만, 마리네티의 초인은 비행기, 자동차, 무기 등의 근대 기술의 위험 안으로 들어가 죽음에의 도발에 의해 단련되는 인물이자 단눈치오의 자기 폭로적, 육욕적 실험과는 전혀 다른 바, 그 때문에도 마리네티는 단눈치오를 격렬하게 공격한다. 양자 사이에는 니체의 바그너 비판과도 유사한 상극이 있다. 단눈치오 자신은 제1차 대전에 자진하여 참전하며, 전후에는 의용군을 지휘하여 피우메를 점거한다는 '초인적 행동'에 나선다. 전쟁도 애국주의도 미학화의 충전제, 초인이 실천하는 예술 행위인바, 그것이 파시즘의 선구 현상이었던 점으로부터 보더라도, 또한 미시마 유키오가 단눈치오를 애독하고 있었던 점으로부터 하더라도, 탐미주의적 시인과 파시즘의 관계 배후에서의 니체의 그림자에 대해 다양하게 생각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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