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힐리즘 이란?
니힐리즘에 대해 생각하고자 할 때 투르게네프의 [아버지와 아들]에 있는 "권위에 굴복하지 않고, 원리가 사람들로부터 아무리 높이 존경받고 있다 하더라도 결국 어떠한 원리도 신조로 삼지 않는" 태도라는 정의가 우선 떠오른다. 이 투르게네프의 니힐리즘 정의는 바쿠닌과 도스토예프스키 등의 사상과도 공명하면서 러시아 니힐리즘의 중핵을 이루고 있다. 이 러시아 니힐리즘 운동은 차리즘 체제에 대한 정치적 저항이라는 측면을 포함하면서도 그에 머무르지 않는 좀 더 광범한 가치 부정, 질서 파괴 충동의 나타남이었다. 이때 니힐리즘이 부정과 파괴의 대상으로 간주한 가치와 질서의 중심이 되어 있었던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그리스도교(교회)였다. 그리고 이러한 그리스도교에 대한 부정, 파괴의 충동은 종교 비판이라는 틀에만 머무르지 않는 기존 세계 총체에 대한 철저하고 근본적인 부정으로 확대되어 간다. 또한 오블로모프주의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데 카당스도 니힐리즘의 한 측면으로 되어간다.
러시아 니힐리즘에 의해 각인된 이와 같은, 즉 자기와 타자를 포함하는 세계 전체에 대한 부정과 파괴의 충동의 돌출은 라우슈닝도 말하고 있듯이 19세기부터 20세기에 걸쳐 다양한 형태로 생기한 정치적, 사상적 니힐리즘의 요람이었다. 하지만 니힐리즘이라는 말의 기원은 상당히 오래 전인 18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특히 중요한 것은 야코비다. 그는 피히테를 표적으로 하면서 칸트 이후의 독일 관념론이 세계의 주관적 구성이라는 입장을 채택함으로써 실재성의 기반을 파괴하고, 더 나아가서는 그리스도에게 화육된 신성도 부정하는 무신론에 귀착했다고 논란한다. 그리고 야코비는 이러한 사태를 니힐리즘이라는 말로 불렀던 것이다. 이러한 야코비의 니힐리즘이리는 말의 사용방식에도 근대와 함께 시작된 세속화와 그것을 통한 전통적 질서의 해체 과정이 투영되어 있다.
니힐리즘은 근대리는 역사적 경험에 내재하는 해체와 확산의 계기를 첨예화한 것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것은 확실히 부정과 파괴의 충동의 나타남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기성 질서의 명에로부터 해방된 자유로운 자기, 자유로운 정신의 발현이라는 긍정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도 보지 못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이러한 니힐리즘의 양면성의 중심에 자리하는 것이 바로 니체다.
니체의 니힐리즘 개념의 개관
니체라고 하면 니힐리즘의 사상가라고 할 정도로 니체와 니힐리즘의 관계는 밀접하다고 생각되고 있지만, 니체와 니힐리즘의 관계는 그렇게 간단하게 정리 될 수 없는 문제를 포함한다.
니체의 저작 가운데 니힐리즘이라는 말이 최초로 등장하는 것은 [학문]의 346장일 것이다. 여기서 니체는 '세계가 절대로 신적인 경과를 취하고 있지 않다는 통찰'로부터 출발한다. 그것은 세계가 가치를 지니며 존경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는 인식을 근저로부터 뒤흔드는 것이다. 이러한 세계의 가치의 동요로부터 생겨나는 의혹은 지금까지 세계와 대치 하고 세계를 부정하고자 하는 인간의 오만함에 의해 은폐되어 왔다. 니체는 이 오만함에서, 불교와 그리스 도교에 내재하고 근대적 페시미즘에서 그 최후의 표현을 보게 되는 미망을 간취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페시즘의 계보는 세계가 무가치할지도 모른다는 의혹, 다시 말하면 세계의 근원이 무일지도 모른다는 의혹을 직시하고자 하지 않고, 또 하나의 가치로서의 인간이라는 척도를 세우는 것에 의해 이러한 의혹에 덮개를 씌워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미망은 그에 대한 직접적인 반발로서의 인간 자신에 대한 다시 말하면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도 산출한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신적인 것의 소실과 부재의 필연적 귀결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신적인 것의 소실과 부재는 세계뿐만 아니라 그것과 대치하는 인간도 포함한 모든 가치의 존립 그 자체의 붕괴로 귀착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을 가치 척도로서 가장 높은 것으로 만드는 미망도 그에 대한 직접적 반발로서의 인간에 대한 혐오와 함께 신적인 것의 소실과 부재리는 사태가 초래한 의혹에 대해 상관적이 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러한 의혹의 핵심에 놓여 있는 세계의 확고한 근거의 소실 • 부재라는 부정적 성격이 그대로 두 가지 태도를 근저에서 공통적으로 규정하는 요소가 되어 있다고 하는 것이다.
인간의 오만함도 인간에 대한 경멸도 모두 세계를 부정적으로 보는 삶의 태도의 소산으로서 공통성을 지닌다. 그리고 이러한 부정적 성격이야말로 니힐리즘에 다름 아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에 대한 가차 없고, 근본적이고 지극히 심각한 의혹이며, 우리 유럽인들을 점점 더 많이, 점점 더 가혹하게 지배하게 되어, 미래의 세대에게 다음과 같은 두려운 양자택일을 강요할 것이다. 존경을 폐기하든지 아니면 너희들 자신을 폐기하라! 후자는 허무주의일 것이다. 하지만 전자 역시도 허무주의가 아닐까? 이것이 우리가 찍어놓은 의문부호이다.
이로부터 우리는 니체의 니힐리즘 개념이 그에 의해 유럽의 역사에 내재하는 숙명으로서 간취된 신적인 것의 소실과 부재로 향하는 과정 '신의 죽음'의 산물이며, 그러한 사태의 부정적인 반영이라는 것을 분명히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서 작용하고 있는 것은 삶의 쇠약이자 퇴폐이며, 무엇보다도 '무에의 의지'에 다름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니체에게 있어 니힐리즘은 하나의 병이었다.
'전문학 공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반시대적 고찰 (0) | 2023.03.04 |
---|---|
반니체 - 좌익의, 자유주의의 (0) | 2023.03.03 |
무신론화, 무에의 의지, 무질 (0) | 2023.03.03 |
다윈주의와 단눈치오 (0) | 2023.03.03 |
[니체] 철학적 의미의 고귀함과 고통 (0) | 2023.03.03 |
댓글